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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몽유 | 2009/08/02 12:30 | 트랙백
서양의 역사와 문화 [영국, 프랑스]

◆ 영국

 9세기부터 10세기에 걸친 데인족의 침략에 대해 저항을 하면서 영국은 통일된 왕국으로 발전하게 된다. 영국 통일왕국의 건설자는 웨섹스의 알프레드대왕이었다. 알프레드대왕은 데인족과 평화협상을 맺고 재건에 노력했으며, 학예부흥에도 관심을 가졌다.


 위탄게모트(Witangemot): 국왕 자문기관인 동시에 국왕선거도 실시. 고위관직자, 대지주 그리고 고위성징자로 구성되어 있었음. 국왕은 그의 직속으로 왕명 작성하는 비서실 소유.


 1016년 덴마크왕 카누트가 통치 → 그의 사후 내분 → 위탄회의에서 고해왕 에드워드 선출.

  → 웨섹스伯 해롤드 VS 노르망디公 윌리엄 → 헤이스팅스전투 → 윌리엄 승리<노르만왕조>


정복왕 윌리엄(1066~1087)

 ① 군사분야: 기존의 군사조직을 개편, 강화시켜 봉건방식을 사용. 왕령을 자기 소유로 접수하고, 저항하지 않은 지주들은 그대로 신하로 삼고, 반항한 색슨의 토지는 몰수하여 종군한 신하들에게 분배함. 대륙식 봉건제도가 성립됨.

 ② 위탄회의 폐지시키고 왕실회의 설치: 권력을 독점해 집중시키고, 왕건을 강화함.

 ③ 솔즈베리서약체결: 1086년 전국 배신들을 소집해 국왕에게 충성을 서약하게 함. 자신들의 직접적 군주보다 국왕에의 충성서약을 앞서는 것으로 규정 ⇒ 지방권력의 약화

 ④ 둠즈데이북: 각 지역의 자원에 관해 상세한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둠즈데이북이라는 토지대장을 편찬. 징세와 행정의 자료로 삼음. ⇒ 재정의 확보


헨리 1세

 - 왕의 재판권 강화와 왕실재정의 정비

 국왕의 재판권을 전국에 파견.

 왕실재정의 정비 위해 1년에 2회씩 왕실 수입과 지출에 관한 보고 하도록 함.


헨리 2세<플란타지네트 왕조>

 ① 왕의 재판권 강화&확대: 교회에 대한 통제 강화위해 클라렌든헌장 마련하고 토마스 아 베게트를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베게트가 왕에게 대항해 살해되었다. 결국 교회 재판권에 대한 통제에는 실패하였으나, 일반법정에 대한 왕의 재판권 강화 성공.

 ⇒ 순회재판제가 전국 규모로 확대. 배심제가 확립

 ⇒ 이 재판제도의 개혁을 통해 영국 특유의 보통법이 발전; 전국에 적용되는 법, 왕국 모든 사람과 모든 지역에 공통되는 법.


사자왕 리처드: 10년의 치세기간 동안 영국에 머문 것은 1년도 되지 않았다.


실지왕 존

 존은 국왕의 수입을 증대시키려고 하였고, 그의 정책은 봉건제후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킴.

 필림 2세와의 전투 실패, 대륙 대부분의 영토 상실.

 봉건귀족들이 1215년 무장봉기를 일으켜 런던 점령. 시민계급도 이에 호응함.

 ※ 마그나카르타(대헌장): 국왕직속신하의 전체회의 승인이 없이 군역대납금, 특별보조세 징수 할 수 없다는 규정(영국의회 과세에 대한 통제 기초)/자유인은 정당한 합법적 절차없이 구속,투옥되거나 재산을 박탈당하지 않는다(영국, 미국에서의 개인 자유의 토대)

  ⇒ 영국 국왕이 제한군주임을 상기시키는, 즉 왕권에 대한 제동역활 수행 확인시킴.


헨리 3세

 극도로 허약하고 낭비가 심했던 왕에 참다 못한 귀족들의 반란 발발.

 ※ 시몽 드 몽포르 의회: 헨리 3세와의 투쟁에서 승리 거둔 몽포르가 시민계급과 주기사의 지지를 얻고자 - 기사 2명+시민대표2명+귀족+고위성직자 = 의회형성(1265)


에드워드 1세

 내란 중 약화된 왕권 회복하고, 왕권 회복 위해 국왕 행정을 분화하고 전문화.

 ① 왕실회의 강화시키고, 업무를 분화하여 전문화시킴.

 ② 왕좌재판소 설치해 왕의 재판권 강화시킴.

 ③ 모범의회 소집(1295): 전쟁에 대비한 자금마련을 위하여 성주이상의 귀족과 고위성직자, 기사, 시민대표를 선거제에 의하여 소집함.

    이 의회 2년 후, 1297년 소집된 의회가 중요☆

에드워드가 의회 승인없이 관세를 부과한 데 대하여 상인과 귀족이 저항하고, 다음해 의회 지도자들이 의회의 과세승인권을 강조하게 된다. / 영국 의회가 프랑스 삼부회와 다른 특이한 점은 매우 강력한 존재가 된 하원의 출현이다.


에드워드 3세

 ① 상, 하원이 분리되고 의회의 권한 강화됨: 주와 도시대표들이 하원을 형성하는데, 후에는 대부분의 입법이 하원에서 발의되고, 과세나 돈의 교부 등에 관한 결정은 하원에서 행해진다.

 ② 치안판사의 설치: 지방귀족(특히 젠트리)과 지주층서 왕으로부터 임명, 지방에서의 왕권 대행자였으나 상당한 독립성 유지. 후에 경찰권까지 흡수하며 지방자치의 중추적 지위 차지.

 그의 시대에 백년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의 왕위계승권을 주장함에 따라서 백년전쟁 발발


리처드 2세 → 랭카스터의 헨리 4세; 왕권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의회 권한 더욱 증대.

  의회내에서의 발언에 대한 면책권과 개회 중 의원의 신체 자유보장 확보. 의회를 통과한 법령에 대해서 국왕과 왕실회의 내용수정이 불가능.


헨리 5세

 아젱쿠르전투(1415)에서 대승해 트로와조약(1420) 체결

 왕태자 샤를의 왕위계승권 부인. 헨리5세가 샤를6세의 딸 캐더린과 혼인해 프랑스왕위계승자가 된다는 것.


헨리 6세: 어린 나이에 즉위한 그는 30세 경 정신이상 일으킴.


에드워드 4세

  요크가문. 헨리6세를 런던탑에 유폐시키고 왕비 추방. 런던탑.


헨리 7세 <튜더 왕조>




◆ 프랑스

 서프랑크의 정치구조에 있어 핵심적 존재는 주백(count)이었고, 이들 유력 제후들의 그늘 밑에서 서프랑크의 왕권은 매우 미약했다. 왕은 언제나 가난했으며 왕의 직할령 또한 많지 않았다. 국왕은 지지세력을 얻기 위해 봉토로 그의 직할령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극도로 축소됨.


위그 카페 <카페왕조>

 왕위세습을 원함 “부왕제”고안 ⇒ 카페왕조가 1328년까지 독점.

 ※ 카페왕조가 존속할 수 있었던 까닭

 ① 정치적 안정을 바라는 교회의 확고한 지지를 받았기 때문: 주교나 수도원장도 대제후의 봉건적 신하가 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래서 가능하면 강력한 국왕을 기대하였다.

 ② 왕국의 대제후의 상위주군 내지 수장으로서 국왕이 필요하였다. 그런데 카페왕조는 매우 약하고 왕령도 넓지 않아 적합하였다.

 ③ 왕위의 세습이 관행으로 인정되고, 왕위를 계승할 세자가 단절됨이 없이 대를 이었던 것.


루이 6세

 수도원장 쉬제를 발탁시켜 민사 업무를 맡기고 자신은 정치에 주력.

 대제후인 아퀴텐과 플랑드르를 얻음 → 국왕 영향력 확대 작업. 왕권 발전의 기초.


루이 7세 → 존엄왕 필립 2세

 ① 영국세력을 프랑스로부터 몰아내고자 하였다. 리처드왕(영)때는 별다른 성공못하다가, 실지왕 존왕때에 기회가 돌아옴. 프랑스 내 영지 몰수 선언, 노르망디, 메인, 앙쥬, 투레인 획득

 ② 지방행정관 창설: 바이이(관할구역에서 왕권 대행하고 사법과 국왕 수입 관장)

                    세네샬(적대적 지역의 인근에 배치되고, 경우에 따라 소규모전투 수행)


성왕 루이 9세

 ① 바이이의 학정 불만 커지자 ‘감찰관’파견해 지방행정관 감독하고 지방민 불평 시정시킴.

 ②왕령 외의 소송도 처리; 고등법원설치.


필립 3세 → 미남왕 필립 4세

 ① 고등법원의 기능과 조직 강화

 ② 회계원설치: 왕실재정의 관장을 위해 설치.

 ③ 왕실평의회설치: 국왕의 자문에 응하는 역할. 점차 중앙 행정기구가 성장하게 됨.

 ④ 삼부회 설립: 교황과의 투쟁에서 국민 지지를 얻고자.

성직자+귀족+제3신분(도시대표) 세 신분별로 구성

(초기)강력한 왕권의 지지세력 구실. 관습과 전통 타파하고 왕권 중앙집권화 공헌

 ⑤ 아비뇽 유수


필립 6세 <발루아 왕조>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필립 6세의 즉위에 항의. 백년전쟁의 발발.

 ※ 백년전쟁의 발발 원인

  ① 프랑스에서의 발루아 왕조 성립과 이에 관련된 왕위계승권문제

  ② 영국왕은 프랑스 내에 광대한 영토 소유. 역대 프랑스왕들은 이를 회복하려 노력. 갈등.

 ③ 플랑드르지방의 문제: 플랑드르는 영국 양모의 주요시장으로 영국와의 주요수입원의 하나였음. 이에 플랑드르지방이 프랑스왕의 지배 하에 들어가는 것 묵과할 수 없었다.


 ※ 백년전쟁의 전개

  ① 크레시전투(1346):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군 격파. 칼레함락. 흑태자. 쟈크리의 난

  ② 푸아티에전투(1356): 흑태자가 국왕 장과 아들 필립 사로잡아 브레티니의 휴전 성립.

  ③ 브레티니의 휴전(1359): 서나 프랑스와 칼레 영유권 인정.

  ④ 샤를 6세 즉위, 헨리5세와의 트로와 조약

  ⑤ 샤를 7세 즉위: 잔 다르크, 오를레앙, 대관식


 ※ 백년전쟁 후

  ① 프랑스: 영국으로부터 영토 획득. 새로운 국민의식 성장. 중앙집권적민족국가로 발전 기여

  ② 영구: 국민의식 강화. 섬 나라로서의 자각 소유.


◆스콜라 철학(Scholaticism -Schole )

중세 신학은 학문의 여왕. 신학과 철학은 분리 불가능할 만큼 혼합.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크리스트교 신앙의 조화. 스콜라 철학은 타협의 철학. 모든 철학적 스펙트럼이 녹아져 있음. 자연과학이나 경험보다는 논쟁, 논증, 분류

스콜라의 핵심적 문제: 보편자 문제, 보편자 논쟁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서문. 포르피리오스

“ 과연 유 genera 와 종 species 는 자연 상태에서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단지 지성의 산물에 불과한가?” 보편성 혹은 보편적인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단지 생각하는 이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데 불과한 것인가? 생각과 생각하는 대상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예컨대 ‘인류’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만 개인들만이 존재하는 것인가?"


보편실재론과 유명론과의 대립

*실재론자(보편은 존재) vs 유명론자(‘이름들’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단지 개체들 )

①보편 실재론:  안셀무스 (d. 1141) : 논리적 질서와 사물적 질서의  재론적 병존

②유명론: 로셀리누스(d. 1120)- 보편, 일반자는 음성으로 정신 외의 실체가 아님.

③의미(중용) 실재론 : 아벨라르- 보편 내지 일반자의 본성은 다수의 개별자에 대한 술어적 존재. 일반자는 단순한 음성이 아니라 의식의 직접적 대상에 의미지향적으로 관계함.

1. 발생기: universalia ante rem -안셀무스 credo ut inteligam

2. 전성기: universalia in rem-중용 실재론자. 아벨라르, intelligo ut credam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신학대전 Summa Theologica 신앙과 이성의 두 개의 영역을 하나의 전체적 진리에 통합하려고 노력, 신앙도 이성도 하나님께로부터 유래하므로 양자의 사이에는 본질적인 모순은 있을 수 없다. 1부: 하나님의 존재와 본성, 속성, 삼위일체 창조. 2부는 타락한 인간과 그 구속의 가능성. 인간의 의지는 완전히 악으로 결정지어져 있지는 않으나 죄로 말미암아 왜곡, 율법과 은혜. 3부: 그리스도의 길되심.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강조

3. 쇠퇴기: universalia post rem: 윌리엄 오캄→ 경험론자, 실증주의자 실용론자


전체적 경향

①실재론은 개인이 단체 혹은 제도의 하위에 놓여지게 되는 경향

  극단적 실재론자-물질세계에의 전면적 부정으로 나아가는 경향

②유명론은 개인이 제도보다도 중요. 인간에 대한 새로운 흥미 환기

  극단적 유명론자-신 또는 교회를 실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 궁극적으로 보편 논쟁은 인간이 사용하는 낱말과 인간이 이들 낱말의 사용을 통해 가르키는 바 사물간의 관계(혹은 실체, 경험, 진리) 사이의 관계에 관한 문제.

① 유명론자 nominalist: 인간은 단순한 낱말, 소리에 불과하며 인간이라는 ‘사물’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개별적인 인간들만이 존재. 단지 대화 및 사고의 편의상 우리는 이들을 인간으로 집단화하는 것에 불과.

② 실재론자 realist: 인간man 이라는 낱말을 특정한 한 개인이 아니라 인간 일반을 의미한다고 생각.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를 대속하였다. 이 낱말들이 기호 임에는 틀림없으나, 우리들이 감각을 통해 포착하는 개별적 존재들보다 더욱 중요한 ‘실재’의 기호이다. 각각의 개별적인 인간은 완전한 인간의 불완전한 일부. 실재론자에게 인류 mankind는 개인보다 더욱 실재적.




# by 몽유 | 2008/01/02 22:51 | 과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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